[한국기독공보 논설칼럼] 부교역자 인권 존중과 사역 환경 개선
운영자
2026-03-17
추천 0
댓글 0
조회 10
[ 논설위원칼럼 ]
부교역자 인권 존중과 사역 환경 개선
신영균 목사
2026년 03월 16일(월) 09:27
|
사순절이 깊어 가고 십자가 정신이 물결쳐야 할 이 때에, 타교단이기는 하지만 한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부교역자에게 쏟아낸 폭언이 유튜브를 달구고 있다. 이는 한국 교회의 영적 권위가 어디까지 추락했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민낯이다. "시키는 대로 안 할 거면 나가라"는 식의 고압적 언사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한국 교회 내부에 뿌리 깊은 권위주의가 낳은 병폐다.
현장에서 부교역자들이 겪는 실태는 사명이라는 이름으로 인내하기에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사역과 무관한 운전기사 노릇이나 사적 심부름 같은 영역 침해는, 거룩한 소명을 비참하고 저급한 노동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더욱 아픈 것은 당회나 담임목사의 눈 밖에 났다는 이유만으로 예고 없이 해임되어, 가족의 생존권마저 한순간에 박탈당하는 비정한 고용 구조다. 이러한 비인격적 대우와 불안정한 환경은 결국 '부교역자 수급 대란'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한국 교회의 목회 생태계를 근간부터 흔들고 있다.
실제로 부교역자를 대하는 태도는 교회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잣대가 된다. 부교역자를 진정한 동역자로 예우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교회들은 위기 속에서도 질적·양적 부흥을 경험한다. 부교역자의 은사를 존중하여 자율적인 사역 환경을 제공하고, 사택 지원과 자녀 교육 등 생활의 안정을 우선시한 교회들은 사역자의 장기 근속률이 높다. 사역자가 행복할 때 그 긍정적 에너지는 고스란히 성도들에게 전달되며, 이는 공동체 전체의 영적 건강과 직결된다. 반면 부교역자를 소모품으로 취급하며 군림하는 교회는 겉보기에 화려할지 모르나 내부로부터 서서히 무너진다. 사역자가 수시로 교체되는 교회에서 성도들은 영적 안정감을 잃고 냉소주의에 빠지며, 결국 복음의 생명력이 사라진 종교 사업체로 전락하고 만다.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기독교적 권위는 지배하는 권세가 아니라 타인을 자유하게 하고 세워주는 섬김의 권위"라고 갈파했다. 또한 마틴 루터는 주의 동역자를 업신여기는 것은 그를 세우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 경고했다. 부교역자를 '나를 돕는 수하'가 아닌 '그리스도의 일을 함께하는 동역자'로 인식하는 대전환이 시급한 이유다. 십자가의 도는 자기를 비워 타인을 살리는 길이지, 타인을 희생시켜 자신의 왕국을 공고히 하는 길이 아니다.
이제 교단 차원의 실질적인 제도 혁신과 사역 환경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직무 범위와 사례비를 명시한 '표준 사역 지침서' 도입을 체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특히 월요일 및 공휴일 휴무 보장, 불가피한 근무 시 대체휴일 제공, 근로기준법에 준하는 법정 휴가 보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쉼 없는 사역은 영적 고갈을 낳고, 고갈된 사역자는 결국 성도를 병들게 한다. 또한 부교역자가 특정 분야에서 평생 사역해도 존엄한 삶이 보장되는 전문 목회자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부교역자가 행복해야 성도가 행복하고 교회가 건강하게 부흥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한국 교회는 다시 회복해야 한다.
지금 한국 교회는 전례 없는 목회적 변곡점에 서 있다. 과거 사역 지망생들로 넘쳐나던 신학교가 정원 미달을 겪고, 교회마다 부교역자 구인난에 비명이 터져 나오는 현실은 단순히 인구 절벽이라는 사회적 현상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교회가 오랫동안 묵인해 온 비인격적 대우와 열악한 사역 환경이 누적되어 나타난 구조적 결과다. 오늘의 부교역자 구인난은 우연한 위기가 아니라, 교회가 외면해 온 문제가 마침내 수면 위로 드러난 예견된 재앙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교회 지도자들이 책임 있게 연대하여 변화를 이끌어야 할 때이며, 이것이 한국 교회의 골든타임을 지키는 마지막 선택일지도 모른다. 부교역자의 인권은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신앙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신영균 목사 / 경주제삼교회
현장에서 부교역자들이 겪는 실태는 사명이라는 이름으로 인내하기에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사역과 무관한 운전기사 노릇이나 사적 심부름 같은 영역 침해는, 거룩한 소명을 비참하고 저급한 노동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더욱 아픈 것은 당회나 담임목사의 눈 밖에 났다는 이유만으로 예고 없이 해임되어, 가족의 생존권마저 한순간에 박탈당하는 비정한 고용 구조다. 이러한 비인격적 대우와 불안정한 환경은 결국 '부교역자 수급 대란'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한국 교회의 목회 생태계를 근간부터 흔들고 있다.
실제로 부교역자를 대하는 태도는 교회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잣대가 된다. 부교역자를 진정한 동역자로 예우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교회들은 위기 속에서도 질적·양적 부흥을 경험한다. 부교역자의 은사를 존중하여 자율적인 사역 환경을 제공하고, 사택 지원과 자녀 교육 등 생활의 안정을 우선시한 교회들은 사역자의 장기 근속률이 높다. 사역자가 행복할 때 그 긍정적 에너지는 고스란히 성도들에게 전달되며, 이는 공동체 전체의 영적 건강과 직결된다. 반면 부교역자를 소모품으로 취급하며 군림하는 교회는 겉보기에 화려할지 모르나 내부로부터 서서히 무너진다. 사역자가 수시로 교체되는 교회에서 성도들은 영적 안정감을 잃고 냉소주의에 빠지며, 결국 복음의 생명력이 사라진 종교 사업체로 전락하고 만다.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기독교적 권위는 지배하는 권세가 아니라 타인을 자유하게 하고 세워주는 섬김의 권위"라고 갈파했다. 또한 마틴 루터는 주의 동역자를 업신여기는 것은 그를 세우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 경고했다. 부교역자를 '나를 돕는 수하'가 아닌 '그리스도의 일을 함께하는 동역자'로 인식하는 대전환이 시급한 이유다. 십자가의 도는 자기를 비워 타인을 살리는 길이지, 타인을 희생시켜 자신의 왕국을 공고히 하는 길이 아니다.
이제 교단 차원의 실질적인 제도 혁신과 사역 환경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직무 범위와 사례비를 명시한 '표준 사역 지침서' 도입을 체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특히 월요일 및 공휴일 휴무 보장, 불가피한 근무 시 대체휴일 제공, 근로기준법에 준하는 법정 휴가 보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쉼 없는 사역은 영적 고갈을 낳고, 고갈된 사역자는 결국 성도를 병들게 한다. 또한 부교역자가 특정 분야에서 평생 사역해도 존엄한 삶이 보장되는 전문 목회자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부교역자가 행복해야 성도가 행복하고 교회가 건강하게 부흥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한국 교회는 다시 회복해야 한다.
지금 한국 교회는 전례 없는 목회적 변곡점에 서 있다. 과거 사역 지망생들로 넘쳐나던 신학교가 정원 미달을 겪고, 교회마다 부교역자 구인난에 비명이 터져 나오는 현실은 단순히 인구 절벽이라는 사회적 현상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교회가 오랫동안 묵인해 온 비인격적 대우와 열악한 사역 환경이 누적되어 나타난 구조적 결과다. 오늘의 부교역자 구인난은 우연한 위기가 아니라, 교회가 외면해 온 문제가 마침내 수면 위로 드러난 예견된 재앙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교회 지도자들이 책임 있게 연대하여 변화를 이끌어야 할 때이며, 이것이 한국 교회의 골든타임을 지키는 마지막 선택일지도 모른다. 부교역자의 인권은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신앙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신영균 목사 / 경주제삼교회



댓글0개